거제도/외도

경남 거제시

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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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거제도
남해안 중부에 위치한 거제도는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거제군의 본도로서, 우리나라 섬 중에서 제주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섬이다. 장승포시와 거제군이 통합되어 거제시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제도는 모래밭, 몽돌 해수욕장, 동백숲과 소나무숲, 기암괴석해안 등 섬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는 무한한 관광자원이 있다.

관광지 소개

해금강

거제관광 일번지로 이름나 있다. 원래 섬의 이름은 칡이 많다, 또는 칡부리가 뻗어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해서 갈도(칡섬)였으나 강원도 금강산에 견줄 만하다해서 바다의 해금강으로 불리게 됐다. 해발 116M에 면적은 0.1㎢의 작은 섬이다. 71년 명승 2호로 지정됐으며 기암절벽에는 풍란과 석란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고, 낚시터로서도 잘 받달돼 있다.
신랑신부바위, 미륵바위, 거북바위, 만물상, 사자바위 등 기기묘묘한 기암괴석들이 산재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섬의 중앙에 있는 십자동굴은 동서남북으로 통하게 돼 있는데 동굴 길이는 각방향 약 100여M다. 바다가 잔잔해야만 유람선은 십자동굴 속으로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동굴을 드나드는 것은 대단한 행운으로 여겨진다.
사자바위 맞은 편의 기암절벽위에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는 수령이 천년을 넘었다하여 천년송으로 불리는 해금강의 자랑거리다.
건설부고시 제164호(1968.12.31)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거제 해금강은 강원도 해금강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구전(口傳)에 의해 해금강으로 불리워지고 있으나 원명은 갈도(曷島)다. 그러나 해금강이란 이름이 조선 중엽 무명의 화가가 그린 거제 해금강과 1934년 발행된 통영군지에 사용될 정도로 구전된 지 오래돼 갈도라는 원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의 해금강의 갈도와 갈곶반도를 말하며 많은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평풍같이 생겼다고 평풍바위, 사자가 표효하는 듯한 사자바위(해와 달이 이 바위에서 뜨는 것을 볼 수 있어 일월관암(日月觀岩)이라고도 함), 천년의 세파에도 청청히 살아온 해금강의 수호송 천년적송 등을 비롯해 신랑각시바위, 촛대바위, 거북바위, 미륵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특히 갈도에는 수상동굴이 있는데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크고 작은 해로(海路)가 있어 「십자동굴」이라고 불리며, 북쪽과 동쪽에 있는 굴로 유람선이 통과할 수 있으며, 남쪽 동굴은 100여M로 간조때 사람이 걸어서 지날 수도 있다.
또 섬에는 풍란, 석란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고 섬 주위 바다에는 수십종의 한?난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삼천명을 보내면서 동해바다에 봉래산이란 영산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불로초를 캐오라한 곳이 바로 이곳 해금강이란 전설이 있다. 해금강옆 제석봉 석벽에 서불(徐市)이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이곳을 지나면서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을 남겼으나 유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자연휴양림

대교방면에서 동부면 소재지를 지나 학동해수욕장으로 가는 고갯길에 있다. 노자산의 해발 150M에서 560M에 걸쳐 120HA규모로 조성된 휴양림에는 등산로와 야영장, 통나무집, 방갈로 등 각종 편의시설이 준비돼 있어 가족단위의 휴양객이 많이 찾는다. 해마다 2월이면 이곳에서 고로쇠 약수축제가 열리며, 거제 노자산 고로쇠는 지리산지역보다 보름정도 일찍 채취되고, 축제기간을 전후해 고로쇠약수를 휴양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10여동의 숙박시설과 40여개소의 야영데크, 취사장, 삼림욕장, 산책로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포로수용소

당시 유엔군은 포로들이 급증하자 외딴 거제도에 같은해 11월부터 고현, 수월, 용산, 제산지구 일대 농지를 징발해 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 수용소에는 인민군, 중공군, 여자포로 등을 합쳐 최대 17만 3000여명의 포로가 수용됐으며, 친공 반공 포로들간의 유혈 충돌과 수용소장인 돗드준장의 납치사건, 남한정부 단독의 2만7000여명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세계사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수용소는 폐쇄됐다. 현재 계룡산 정상의 통신소, 고현중학교 옆의 경비중대 막사와, 장평리의 보급소 창고, 수월리 양정리 일대 등에 당시 수용소 잔해들이 산재해 있다. 당시 거제도에는 10만명의 주민과 약 15만명의 피난민, 17만명의 포로 등 약 42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기도 했다. 수용소는 83년 경남도 문화재자료 99호로 지정됐으며, 거제시는 99년 말 1만여평의 대지 위에 전시관, 포로수용소 재현 막사, 당시 사용됐던 각종 무기류 등을 전시하는 포로수용소 유적관을 완공?개관함으로써 하루 1000여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